관념의 세계
김민영 /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예술은 삶의 체험으로부터 시작되는 인간의 감정적 표현으로 그 시대와 역사 그리고 개인 의 삶까지 아우르며 다양한 표현방식을 통해 표출된다. 이러한 예술에서의 창작행위는 한 개인을 이루는 사회와 문화, 환경 등 전반적인 외부세계와 그 안에서 축적되어온 내면의 고유함이 공존한다. 그리고 이는 시간의 흐름 속 개인의 자유로운 연상에서 비롯되어 예술 가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정서, 현실, 환경 등 폭 넓은 체험형식들이 창작활동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작용한다. 이에 Ellie Jung 작가는 실재의 구체적인 재현에서 벗어나 본인의 어 린 자녀의 스티커 놀이에서 영감을 받아 발전시킨 새로운 창조적 표현방법을 통해 주관적 인 관념을 현실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의 작품을 보면 처음에는 다채롭게 분배된 색감에 시선이 가지만 이내 재료가 요철효과를 내고 촉감적 이미지를 형성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작품은 물감의 색감과 질 감이 만들어내는 독특하고 강렬한 분위기에 이끌리 듯 집중하여 바라보게 되는 힘이 있다. 작가가 베이킹용 짤 주머니로 물감을 실처럼 짜서 굳힌 패치가 캔버스 위에서 새롭게 배치 되고 중첩되어 붙여지며 입체감 있는 추상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울퉁불퉁하게 굳은 재 료의 질감 표현의 변화가 작품에 생동감을 주어 화면 속 세계가 보다 선명하게 다가온다. 화면을 가득 메운 추상의 형태는 작가의 관념을 형성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비정형적인 것 들로 내적 심리의 무한한 변화를 갖는다. 저마다 다른 모습이지만 서로 간 영향을 주며 자 유분방한 색채의 어울림과 아름다움을 창조해내고 있다.
흡사 부조와 같은 형태를 띠는 작가의 회화는 불규칙한 물감 덩어리와 형태들이 평면을 깨고 입체적으로 튀어나와 있어 돌출된 부분 사이로 실제의 입체적 음영이 만들어진다. 그 음영은 전시장의 조명과 빛의 방향에 따라 매번 다른 부피감과 물성을 구현해낸다. 이에 얇은 평면 작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촉각적 경험이 다각도의 감상을 유도하며 작품으로부 터 파생된 에너지는 작품의 의미를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유연하게 굳은 물감의 굴곡진 형 태는 삶의 흘러가는 시간과 같이 유동적으로 느껴져 화면을 구석구석 관찰하게 만든다. 이 러한 형태와 움직임은 끊임없이 변화하고자 하는 작가의 새로운 시도이며 삶 그 자체에 대 한 기록이 된다. 작가의 회화의 추상성에 내면의 흐름을 자유롭게 두는 사이 어느덧 몰두 의 시간에서 비롯한 시간의 축적에 진입하게 된다. 지나고 보니 모든 날들이 의미가 있고, 평범한 일상은 에너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시간임을 상기시켜준다. 이처럼 작가는 작품 을 통해 내면의 감각을 깨우고 깊은 사유를 유도하여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이야기 한다.
이번 전시는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내며 개인의 기억과 감각 또한 반영된다. 작가의 작품을 통해 내면에 숨겨진 감각들을 발현시키고 이로 부터 오는 위로와 치유를 얻는다. 이에 따라 그간 인식하지 못했던 자아와 적극적인 교감 이 가능해지며 나아가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작가 는 자신의 관념의 세계를 표출함에 있어서 추상의 이미지를 끌어내어 가장 단순하고도 복잡한 형태의 언어로 풀어낸다. 어느새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의 내면에는 심오한 감정들 이 깃들며 바쁜 삶으로 침체된 마음에 새로운 시작을 위한 힘찬 에너지가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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